임차권등기명령 후 이사, 등기 전에 나가면 보증금 순위가 뒤집힙니다
새집 잔금일은 다가오는데, 집주인은 보증금을 언제 돌려줄지 말해 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임차권등기명령 신청했으니 이제 이사해도 되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위험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사는 가능합니다. 다만 그 기준은 신청한 날이 아니라, 등기부에 임차권이 실제로 기재된 날입니다. 2025년 4월 대법원은 등기보다 불과 사흘 먼저 이사한 임차인의 순위가 뒤집힌 사건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판결을 중심으로, 이사 날짜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정리합니다.
임차권등기명령, 이사해도 권리를 지켜 주는 장치
임차인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집에 살면서(점유) 주민등록을 유지하는 동안에만 유지됩니다.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이사하고 전출하면 그 보호가 끊기게 됩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제도입니다. 임대차가 끝났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법원에 신청하면, 법원이 등기소에 촉탁해 등기부에 임차권을 올려 줍니다. 등기가 마쳐지면 그 뒤에는 이사하고 전출해도 이미 갖고 있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그대로 유지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5항). 보증금 중 일부만 못 받은 경우에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2023년 7월 19일부터는 법원의 결정이 임대인에게 송달되기 전이라도 등기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집주인이 연락을 끊고 송달을 피하는 경우에도 등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등기 전에 이사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사흘 차이로 뒤집힌 순위
대법원 판결의 사실관계를 날짜순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2017년 2월: 임차인이 입주하고 전입신고를 마쳐 대항력을 취득
2018년 1월: 집에 근저당권이 설정됨
2019년 4월 5일: 임차인이 이사
2019년 4월 8일: 임차권등기 완료
원심은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임차권등기가 마쳐졌으니 대항력이 유지된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항력은 점유와 주민등록을 계속 갖추고 있어야 유지되므로, 이사한 날 기존 대항력은 사라졌습니다. 사흘 뒤 마쳐진 등기로 그 대항력이 소급해 되살아나지 않고, 등기일부터 새로운 대항력이 생길 뿐이라는 것입니다(대법원 2025. 4. 15. 선고 2024다326398 판결).
이 판결에서 눈여겨볼 점은 순위가 뒤집힌 상대가 이사와 등기 사이에 생긴 권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018년의 근저당권은 원래 2017년에 입주한 임차인보다 후순위였습니다. 그런데 기존 대항력이 사라지고 2019년에 새 대항력이 생기면서, 근저당권이 임차권보다 앞서게 됐습니다. 결국 경매에서 임차권은 근저당권과 함께 소멸했고, 임차인은 집을 산 매수인에게 남은 보증금을 청구할 수 없었습니다. 계약 기간 중 설정된 근저당이 있는 집이라면 이사 시점 하나로 순위가 통째로 뒤집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사 날짜는 이렇게 역산하세요.
계약 종료 확인: 계약 기간이 끝났거나 해지 통지의 효력이 생겼는지 확인합니다. 묵시적으로 갱신된 계약이라면 임차인이 해지를 통지한 뒤 3개월이 지나야 종료됩니다.
법원에 신청: 주택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신청합니다.
결정: 법원이 임차권등기명령을 결정합니다.
촉탁과 기입: 등기소가 등기부에 기입하기까지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릴 수 있습니다.
확인: 등기사항증명서를 발급받아 '주택임차권'이 기재됐는지 직접 확인합니다.
이사·전출: 여기까지 확인한 뒤에 이사하고 전출합니다.
새집 잔금일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그 날짜에서 거꾸로 계산해 최소 몇 주의 여유를 두고 신청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잔금일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 등기 일정이 나온 뒤에 잔금일을 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신청 방법과 준비물
임차주택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 지방법원지원 또는 시·군법원에 신청합니다. 인지대는 2,000원이고 송달료 등이 추가로 듭니다.
신청서에는 임대차 목적물,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액, 점유를 시작한 날, 주민등록일, 확정일자를 받은 날을 적습니다. 첨부서류는 등기사항증명서, 확정일자가 찍힌 임대차계약서, 점유 개시일과 주민등록일을 소명하는 주민등록초본 등입니다. 등기부상 용도가 주거시설이 아니라면 실제로 주거용으로 쓰고 있다는 자료도 함께 내야 합니다.
신청에 든 비용은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같은 법 제3조의3 제8항). 대법원은 이 비용을 소송비용 확정 절차를 따로 거치지 않고도 소송으로 청구하거나,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청구한 금액과 상계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5. 4. 24. 선고 2024다221455 판결).
신청 전에, 등기부부터 펼쳐 보세요
저는 임차권등기명령 사건을 맡으면 신청서를 쓰기 전에 등기부부터 확인합니다. 내가 어떤 순위에 서 있는지 알아야 이사 시점의 위험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대인 명의가 바뀌지 않았는지
이미 경매개시결정이 들어와 있는지
압류나 가압류가 있는지
근저당권 설정일이 내 전입일보다 앞인지 뒤인지
특히 내 전입 뒤에 설정된 근저당이 있다면, 앞의 판결처럼 이사 시점에 따라 순위가 뒤집힐 수 있으니 더 신중해야 합니다. 이미 경매가 시작된 집이라면 배당요구 종기 등 경매 절차의 기한도 함께 챙겨야 합니다.
사례로 보면
실제 분쟁을 토대로 각색한 사례입니다.
계약이 끝났는데도 임대인 E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자, D씨는 전세사기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새집 잔금일이 정해져 있어 더 기다릴 수 없었던 D씨는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며칠 뒤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사한 날에는 아직 등기가 기입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 사이 같은 집에 다른 임차인 F가 전입신고를 마쳤고, 얼마 뒤 경매가 시작됐습니다. D씨의 임차권등기는 F의 전입신고보다 늦게 기입된 셈이 되어, 배당 순위에서 F에게 밀렸습니다. 등기부를 한 번만 확인하고 이사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오늘 확인할 세 가지
계약이 법적으로 종료됐는지, 해지 통지를 했다면 효력이 언제 생기는지
등기부에 내 전입일보다 늦게 설정된 근저당, 압류, 경매개시결정이 있는지
새집 잔금일과 등기 완료 예상일 사이에 충분한 여유가 있는지
순위가 얽혀 있거나 이미 경매가 진행 중이라면, 이사 날짜를 정하기 전에 법무법인 지헌 임대환 변호사와 먼저 상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미 이사한 뒤에도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나요?
A. 신청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점유를 잃은 뒤라면 등기가 마쳐진 날부터 새로운 대항력이 생기므로, 그 전에 전입한 다른 임차인이나 설정된 권리보다 순위가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Q. 등기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요?
A.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소송비용 확정 절차 없이 소송으로 청구하거나, 임대인이 차임 상당액 등을 청구해 올 때 상계하는 방식으로 행사할 수 있습니다.
Q.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면서 임차권등기부터 말소해 달라고 합니다.
A. 보증금 반환이 먼저입니다. 판례는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가 임차인의 임차권등기 말소의무보다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2005. 6. 9. 선고 2005다4529 판결). 보증금을 모두 받은 뒤에 말소에 협조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