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분쟁조정, 집주인이 응하지 않을 때 세입자가 밟아야 할 다음 단계
조정 신청서를 냈는데 집주인에게서는 전화도, 문자도 없습니다. 이럴 때 "답을 안 하면 어차피 각하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예전 제도입니다. 2020년 12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집주인이 아무 의사도 밝히지 않으면 각하하던 규정은 삭제됐습니다.
지금은 집주인이 침묵해도 조정 절차가 시작됩니다. 다만 조정에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응하지 않는 집주인이라면 결국 소송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조정이 어떤 경로로 끝나는지, 그 뒤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집주인이 답하지 않아도 조정은 진행됩니다
조정위원회는 신청을 접수하면 지체 없이 절차를 개시하고, 집주인에게 신청서를 보냅니다. 집주인이 아무 반응을 하지 않더라도 위원회는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당사자에게 출석이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조정이 도중에 끝나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각하: 집주인이 "조정에 응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통지한 경우입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21조 제3항 제5호).
불성립: 위원회가 조정안을 보냈는데 통지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서면으로 수락하지 않으면 거부한 것으로 봅니다(같은 법 제26조 제2항).
반대로 집주인이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조정서가 작성됩니다. 이때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문구가 조정서에 들어가면, 소송 없이 그 조정서로 바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같은 법 제27조). 조정이 성립될 분위기라면 이 문구를 꼭 넣어 달라고 요청하셔야 합니다.
조정이 무산됐다면, 지급명령과 소송 중 무엇을 고를까
각하든 불성립이든 조정 절차는 거기서 끝납니다. 다음 선택지는 지급명령과 민사소송입니다.
흔히 "금액이 작으면 지급명령"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기준은 금액이 아니라 집주인이 다툴 가능성입니다. 지급명령은 서면만으로 빠르게 진행되지만, 집주인이 이의신청을 하면 결국 소송으로 넘어갑니다. 보증금에서 원상복구비를 공제하겠다거나 액수를 다투는 집주인이라면 처음부터 소송을 택하는 편이 시간을 아낍니다. 청구액이 3천만 원 이하라면 절차가 간소한 소액사건으로 진행됩니다.
소송에는 집주인에게 부담이 되는 장치도 있습니다. 보증금 반환을 구하는 소장이 송달된 다음 날부터는 연 12%의 지연손해금이 붙습니다. 조정에는 응하지 않던 집주인이 소장을 받고서야 협의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입니다.
소장을 쓰기 전에, 조정 서류부터 다시 펼쳐 보세요
저는 조정이 무산된 사건을 맡으면 조정 신청서와 결과 통지서를 가장 먼저 확인합니다. 조정 단계에서 청구한 항목과 금액이 소장에 담을 청구 내용과 맞는지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정 때 보증금만 청구하고 손해배상 등 다른 항목은 빠뜨렸다면, 그 부분은 따로 시효를 관리해야 할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조정 과정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기록해 두세요. 연락 자체가 없었는지, 명시적으로 거부했는지, 어떤 이유를 댔는지는 소송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예측하는 데 쓸모가 있습니다.
챙겨야 할 서류 6가지
임대차계약서 원본(특약 포함)
보증금 지급내역(계좌이체 확인서)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 내용증명과 문자
수선 문제로 해지한 경우, 하자 사진과 수선 요청 내역
이미 이사했다면, 실제 이사일과 전출일을 보여주는 자료
조정 신청서와 각하·불성립 통지서
이사를 나갈지, 계속 살면서 기다릴지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면 그때 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집주인이 많습니다. 하지만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는 새 세입자가 구해지는지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말만 믿고 기다릴 이유는 없습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집에 계속 사는 것은 불법점유가 아닙니다. 대법원은 임대차가 끝난 뒤 임차인이 보증금을 받기 위해 집을 점유하는 동안에는 보증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44224 판결).
반대로 이직이나 새집 입주 때문에 먼저 나가야 한다면, 이사 전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등기가 마쳐진 것을 확인한 뒤 이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사로 점유를 넘기면 그때부터 시효가 진행되므로, 소송 일정도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조정 신청만으로 시효 관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이미 이사를 나갔고 시효 만료가 다가오는 사건이라면, 조정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소 제기나 가압류처럼 확실한 수단을 검토하세요.
사례로 보면
실제 분쟁을 토대로 각색한 사례입니다.
전세 계약이 끝난 C씨는 집주인 D에게 여러 차례 보증금 반환을 요청했지만, D는 매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미뤘습니다. C씨는 임대차분쟁조정을 신청했으나 D가 조정에 응하지 않아 절차는 그대로 끝났습니다.
C씨가 저를 찾아온 것은 조정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난 뒤였습니다. 서류를 검토한 뒤 바로 보증금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소장을 받은 D는 그제야 먼저 협의를 요청해 왔습니다. 결국 C씨는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았습니다. 조정이 끝난 뒤 시간을 더 흘려보냈다면 그만큼 보증금을 돌려받는 날도 늦어졌을 것입니다.
오늘 확인할 세 가지
조정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진행 중, 각하, 불성립)와 통지를 받은 날짜
임대차계약서와 보증금 이체내역이 손에 있는지
계속 거주할지, 임차권등기명령 후 이사할지
이 세 가지가 정리되면 소송 준비의 큰 틀은 잡힌 셈입니다. 집주인의 공제 주장이나 시효 문제가 얽혀 있다면 법무법인 지헌 임대환 변호사와 먼저 상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정이 끝났는데, 같은 위원회에 다시 조정을 신청할 수 있나요?
A. 같은 분쟁을 같은 조정위원회에 다시 신청하면 각하될 수 있습니다. 법원의 민사조정을 이용하는 방법은 있지만, 집주인이 이미 조정에 응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소송으로 바로 가는 편이 결과적으로 빠른 경우가 많습니다.
Q. 집주인이 조정을 거부하면 따로 불이익이 있나요?
A. 조정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받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송으로 넘어가면 소장 송달 다음 날부터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부담하게 되므로, 반환을 미룰수록 집주인의 부담은 커집니다.
Q. 조정이 성립했는데 집주인이 약속한 날에 돈을 주지 않으면요?
A. 조정서에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문구가 있다면, 그 조정서로 바로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문구가 없다면 조정 내용을 근거로 별도의 소송을 거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