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카드로 명도를 멈출 수 있을까 — 상가 임대인이 읽어야 할 다음 수
상가 임대차가 끝나 인도를 요구하면 임차인이 이렇게 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권리금을 못 받았으니 그거 해결되기 전에는 못 나갑니다."
체스로 치면 상대가 꺼낸 강한 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수는 두 겹으로 나눠서 읽어야 합니다. 첫째, 권리금 문제가 인도 자체를 멈출 수 있는가. 둘째, 권리금 손해배상 청구가 애초에 성립하는가. 앞의 질문은 답이 비교적 분명하고, 뒤의 질문은 임대인이 그동안 어떤 수를 두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첫 번째 수: 명도와 권리금은 다른 줄 위에 있습니다
임차인이 상가를 돌려줄 의무는 임대차계약이 끝나서 생깁니다.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해 배상할 의무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의 보호의무를 어겨서 생깁니다. 대법원은 두 의무가 별개의 원인에서 생기므로 동시이행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9. 7. 10. 선고 2018다242727 판결).
그래서 "권리금부터 주면 나가겠다"는 주장은 인도 청구를 막는 동시이행 항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임차인이 권리금 문제를 그냥 접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소송에서 반소로, 또는 별도 소송으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명도는 명도대로, 배상은 배상대로 따로 판단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 번째 수: 임차인의 청구가 서려면 네 칸이 모두 채워져야
권리금 손해배상 청구는 아래 조건이 모두 맞아야 성립합니다.
보호기간 안의 일일 것. 임대차 종료 6개월 전부터 종료 시까지 벌어진 방해여야 합니다. 갱신요구권을 행사해 임대차가 이어지는 동안은 아직 종료가 다가오지 않았으므로 이 기간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신규임차인을 주선했을 것.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새 임차인이 될 사람을 구체적으로 소개해야 합니다. 다만 권리금 계약이 미리 체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대법원 2019. 7. 10. 선고 2018다239608 판결).
임대인의 방해행위가 있을 것. 신규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하거나 받는 행위, 현저히 높은 차임·보증금 요구, 정당한 사유 없는 계약 거절 등이 해당합니다.
면제 사유가 없을 것. 3기 차임 연체 같은 갱신거절 사유가 있으면 임대인은 보호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네 번째 칸은 특히 꼼꼼히 봐야 합니다. 갱신을 요구할 당시에는 연체액이 3기에 못 미쳤더라도, 임대차 기간 중 3기 차임에 이르도록 연체한 사실이 있었다면 임대인은 갱신을 거절할 수 있고 권리금 보호의무도 지지 않습니다(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다263635 판결). 나중에 다 갚았다고 해서 그 이력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모든 칸이 채워지더라도 배상액에는 한도가 있습니다. 신규임차인이 주기로 한 권리금과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 중 낮은 금액을 넘지 못합니다. 청구권은 임대차가 종료한 날부터 3년 안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합니다.
세 번째 수: 임대인이 두지 말아야 할 수, 둘 수 있는 수
임대인 입장에서 위험한 것은 법리보다 말입니다. 인도를 빨리 받고 싶은 마음에 던진 한마디가 나중에 배상책임의 근거가 됩니다.
두지 말아야 할 수
"누구를 데려와도 계약 안 합니다."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 의사를 확정적으로 밝히면,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을 주선하지 않았어도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9. 7. 4. 선고 2018다284226 판결).
"제가 직접 장사할 겁니다." 대법원은 최근 임대인이 직접 영업할 계획이라는 이유만으로는 거절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사건에서는 임대인이 종료 약 10개월 전부터 직접 쓰겠다고 밝힌 것이 확정적 거절로 인정됐습니다(대법원 2025. 11. 20. 선고 2024다305605 판결).
시세를 크게 넘는 차임·보증금 요구. 신규임차인에게 현저히 고액의 조건을 내미는 것은 법이 정한 방해행위입니다.
둘 수 있는 수
신규임차인 검토. 보증금이나 차임을 낼 자력이 없거나, 임차인으로서 의무를 위반할 우려가 있는 등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계약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구체화된 재건축 계획의 고지. 재건축 필요성이 객관적이고 계획이 구체적이며 이후 언행이 그와 일치한다면, 재건축 계획과 시점을 알린 것만으로는 방해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 있습니다(대법원 2024. 7. 31. 선고 2024다232530 판결).
1년 6개월 이상 비영리 사용. 종전 임대차 종료 후 실제로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쓰지 않는 경우도 정당한 사유로 봅니다.
거절해야 한다면 '누구든 안 된다'가 아니라, 이 사람과 이 조건에서 왜 어려운지를 구체적으로 남기는 것이 안전합니다.
가상 장면: 같은 거절, 다른 결과
아래는 설명을 위해 만든 가상의 예입니다.
임대차 만료 8개월 전, 임대인 D는 임차인에게 "끝나면 아들이 카페를 할 거라 새 사람은 안 받는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같은 건물의 다른 임대인 E는 만료 5개월 전, 임차인이 소개한 신규임차인의 재무 자료를 받아 검토한 뒤 "직전 2년 사업 실적과 보증금 마련 계획으로는 차임 지급이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회신했습니다.
D의 문자는 직접 사용 계획만으로 미리 거절한 수입니다. 그래서 임차인이 주선을 시도하지 않았더라도 배상 청구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E는 구체적인 사람을 두고 구체적인 사유로 답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도 청구 자체에는 지장이 없지만, 권리금 반소에서 받아 들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 소장보다 먼저 적어 둘 기보
차임 납부 원장 전체: 최근 몇 달이 아니라 임대차 기간 전체를 확인합니다. 3기 연체 이력이 있었는지가 가장 먼저 볼 지점입니다.
종료일과 보호기간: 종료 6개월 전이 언제인지 계산하고, 그 기간에 오간 연락을 따로 모아 둡니다.
주선 연락 원본: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의 인적사항과 조건을 알려온 문자나 메일을 원본으로 보관합니다.
내 답변의 문구: 보낸 문자와 내용증명을 다시 읽고, 확정적 거절로 읽힐 표현이 있었는지 점검합니다.
제시한 임대 조건: 신규임차인에게 제시한 차임·보증금을 주변 시세 자료와 함께 정리합니다.
재건축·자가사용 계획 자료: 계획이 있다면 그 구체성과 일관성을 보여줄 서류를 준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임차인이 반소로 권리금 배상을 청구하면 명도 판결이 늦어지나요?
본소와 반소를 함께 심리하므로 소송 기간이 길어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권리금 배상은 인도 의무와 동시이행 관계가 아니므로, 반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도 청구가 기각되지는 않습니다. 1심에서 가집행 선고를 받으면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도 인도 집행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Q. 임대차가 10년을 넘었으면 권리금 걱정은 없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전체 임대차기간이 법정 갱신 한도를 넘어 갱신요구권이 없는 경우에도 임대인은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무를 진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5312 판결). 당시에는 한도가 5년이었고 현재는 10년이지만, 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마치며
권리금은 인도를 막는 방패가 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임대인이 둔 수에 따라서는 별도의 청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명도소송을 앞두고 있다면 소장보다 먼저 차임 원장과 그동안 주고받은 문자부터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판단이 서지 않는 지점이 있다면 그 기록을 정리해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